“한국을 사랑하신 분인데 한인 손에 돌아가시다니…” _마일리지 카드 한도로 돈 벌기_krv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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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어느 교수님보다도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인 유학생들을 사랑으로 돌봐줬던 교수님인테 이렇게 한국인 학생의 손에 돌아가시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버지니아공대 기계공학과 박사후과정에 적을 두고 있는 대전 출신 유학생 정남희(기계공학과.박사후과정)씨는 19일 "완성돼 가는 논문을 볼 때마다 교수님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면서 이번 총격사건으로 지도교수를 잃은 안타까운 마음을 밝혔다. 정씨의 지도교수는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이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로, 이번 사건에서 조승희씨의 총탄에 숨을 거둔 고(故) 리브레스쿠 리비우 교수. 리비우 교수는 전날 뉴욕에서 많은 유대인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영결식을 가진 뒤 이날 고국인 이스라엘에 안장됐다. 정씨는 "교수님은 내가 박사후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 땅에 왔을 때 내가 머물 집을 방문, 한국산 과자를 많이 사다 놓고 가시고 추수감사절에는 옷도 선물하실 정도로 자상하셨던 분"이라고 리비우 교수의 따뜻한 마음을 회상하며 슬픔을 삼켰다. 리비우 교수는 70을 훨씬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정열적으로 연구에 정진, 많은 학생들이 60대로 착각할 정도였던 학구파로, 충남대 기계공학과 송오섭 교수 등 자신이 직접 지도한 한국인 학생만도 10여명에 달하한다. 정 씨는 "최근까지도 교수님은 한국에 있는 제자들과 공동으로 논문을 쓴 것은 물론 제자나 다른 학생들이 논문을 보내오면 자문을 아끼지 않았던 분"이라며 "한국도 몇번 방문했었다"고 소개했다. 무엇보다도 정씨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대목은 최근 부인이 암으로 고생을 하고 있어 마음의 짐이 무거운 상태에서 이런 변고를 당하게 됐다는 점. 정씨는 "교수님은 미국에 오래 사셨지만 운전도 하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만 몰두하셨던 분"이라면서 "이렇게 돌아가실 줄 알았으면 교수님이 퇴근하실 때 내 차로라도 모셔다 드렸어야 하는 건데..."라며 북받쳐오르는 슬픔에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그는 리비우 교수가 장구치는 인형 등 한국 유학생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지금까지 사무실에 소중히 간직해왔던 분이라며 미국의 어느 교수보다도 한국을 사랑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정 씨는 "오늘 그동안 사용했던 짐을 찾기 위해 사건현장인 노리스홀에 들어갔는데 과사무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교수님 옷을 보고 나니 교수님이 돌아가셨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도교수와 반대로 자신은 `천우신조'로 참변을 면할 수 있었다고 정씨는 밝혔다. "이번 학기에 박사후과정을 마치게 돼 국내 대기업에 취업을 준비중인데, 마침 17일이 신청마감일이라서 집에서 서류를 준비하느라 평소보다 2시간 늦게 학교로 출발하면서 충격적인 사건을 알게 됐다"면서 "평소 같으면 사건 발생 시간에 나도 노리스홀 연구실에 있었을 것이고 운명이 어떻게 됐을 지 나도 모를 일"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